BGM정보: 브금저장소
브금: Hans Zimmer - Tennessee (진주만ost)
출처: 피키캐스트 "Curious Park"님
오늘은 <미국 역사 16편>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지난 편에서, 2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미국의 참전 이유 등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요.
미국에게 2차 세계대전은 참 많은 의미와 상징성을 가지는 전쟁입니다.
미국이 이 전쟁을 거치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나라(천조국)으로 레벨업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왜 때문에?'
미국은 천조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Remember Pearl Harbor!!
: 미국의 참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12월 7일.
미국인에게 이 날은 영원히 잊지 못할 치욕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대가 미국의 50번째 주였던 하와이의 '진주만(Pearl Harbor)'을 공격한 것이었죠. 단언컨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20세기에 벌어진 그 어떤 사건보다도
전 세계의 판도와 상황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 공격한 나라가 하필 '미국'이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왜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세계의 판도가 달라졌을까요?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잠자는 호랑이였던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미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에게 무기나 군수 물품을 팔면서 쏠쏠하게 이득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즉,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하여 전쟁에 뛰어들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일본의 함대와 폭격기가 미국의 진주만을 급습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미국 정부는 급습 하루 후인 12월 8일에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합니다.
이로써,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직접적으로 참전하게 된 것과 동시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결론적으로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개박살' 당합니다. 그냥 전쟁에서 진 정도가 아니라, 일본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진정한 공포'를 맛보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2차 세계대전의 자세한 과정은 후일 연재 예정인 시리즈에서 다뤄보기로 하고요. 오늘은 이 전쟁을 통해 미국이 어떠한 이익을 취했고, 세계 정세는 어떤 흐름으로 변모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미국은 약 4년 가까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전쟁을 치렀던 무대는 본토인 '아메리카'가 아니라, 유럽이나 태평양이었다는 것이죠.
즉, 혈기왕성한 미국 남자들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을 때, 미국 본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지난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도중에 전 세계 군수 물품 총 생산량의 40%를 만드는 기염을 토합니다.
대공황으로 실업이나 디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했었는데, 2차 세계대전 덕택에 그동안의 문제들이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이죠.
이렇듯 새롭게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 연방이 '예산'을 급격히 증가시켰기 때문입니다.
루즈벨트 왈
: "전쟁도 시작되었는데, 지갑 좀 열어볼까?"
이 그래프는 당시 미국 정부가 지출한 내역인데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미국의 1년 지출액은 200억 불 가량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는 6배 가까이 증가하죠.
이렇게 미국 정부의 씀씀이가 커진 이유는 예상하셨다시피 '군수 시설'을 대규모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변 지역에 많은 공장과 군수 시설, 수송 시설 등을 만들었는데요.
이는,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을 대비한 방책이었죠. 그래서 이전까지 주로 '영화' 산업으로만 유명했던 LA가 2차 세계대전 시기 이후부터 미국 조선/항공 산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능~
또한, 2차 세계대전은 그동안 미국이 치렀던 어떤 전쟁보다도 기술과 과학에서 '혁신적인' 진보를 이루어낸 전쟁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쟁 초기에는 독일과 일본의 기술이 미국을 압도했습니다. 특히, 독일은 1930년대부터 스페인 내전에 관여하면서, 각종 무기들의 화력 테스트와 검증 작업을 충분히 거쳤기 때문에
탱크나 장갑차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매우 우수한 편이었죠. 일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본은 태평양과 아시아를 삼키려는 야욕을 실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기술을 '항공 분야'로 정하고,
해상 전투기 기술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택에, 일본의 전투기는 진주만을 아주 성공적으로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죠.
반면, 전쟁 초기에 미국이 자랑할만 한 유일한 기술은 바로 무기의 '대량 생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독일의 생산 시스템이 '프로토스'이라면 전쟁 초기 미국은 '저그'의 방식과 비슷했던 거죠. (물량에 장사 없다)
그리고 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독일의 'U보트'라는 잠수함 때문에 머리털이 다 뽑힐 지경이었다능~
U보트는 몰래 다가와 연합군의 함선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도망가곤 했어요. 그래서 미국이 열중한 분야는 바로 '레이더 기술'이었습니다.(U보트를 초기에 발견해야 했기에)
미국 정부는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레이더와 수중 음파탐지기 기술을 개발하게 했죠. 그 결과, 레이더 기술에 있어서는 독일을 훨씬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올인한 기술이 한 가지 더 있죠. 바로 '정보 수집' 분야였습니다. 즉, 독일이나 일본의 암호화된 시스템을 해독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에니그마'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암호 통신을 했는데, 연합군이 이를 해독할 수 있게 되면서 U보트의 예상 위치와 진로 등을 모두 알 수 있게 되었죠.
그 결과, 독일은 총 900척의 U보트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연합군의 암호 해독으로 777척이 수장됩니다.
그렇다면, 전쟁 기간 동안 미국 본토에 있던 미국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미국인들은 '대공황'이라는 폭탄을 맞기 전에, 이미 1920년대에 굉장한 풍요로움을 누렸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공황으로 한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했죠.
그런데 2차 세계대전으로 경제가 다시 부흥하자, 미국인들에게 다시 풍요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갑자기 수중에 돈이 넉넉하게 있었고,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참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풍요로운 시대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기간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본토의 미국인들이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동안, 미국 남자들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죠.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인들의 절반 이상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영화관에 갔습니다. 또한, 종군 사진 기자가 직접 전투 현장을 찍어와서 잡지에 싣곤 했는데, 미국인들에게 아주 큰 인기를 끌었죠.
휴양지에는 카지노나 경마장 등이 성행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다시 찾아온 풍요로움을 진정으로 만끽했어요.
또한, 경제가 번영함에 따라 '결혼 인구'가 대폭 증가합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에 '베이비붐'이 곧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죠.
실제로 미국의 출산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여, 1950년대 후반에는 10년 전보다 약 20%의 인구가 증가하게 됩니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의 형세는 연합군의 승리로 이미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점점 현실 감각을 상실한 '미치광이'로 변해가고 있었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몰락 일보 직전이었죠.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5년 8개월'만인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와이프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칩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변장을 하고 도피행각을 벌였으나, 결국 잡혀 총살 당하죠. 그는 밀라노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전시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1945년 2월,
미국의 루즈벨트와 영국의 처칠,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이 '얄타'에서 회담을 갖습니다.
이 회담은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과 독일의 전후처리 문제를 다루는 자리였죠.
F. 루즈벨트 왈
: "헤이~ 내가 봤을 때, 이 전쟁은 우리들의 승리로 끝날 것 같은데 어때? 스탈린?"
스탈린 왈
: "우리 소련군이 지금 베를린을 털고 있어. 조만간 이 전쟁은 우리 힘에 의해 마무리될 거야. 걱정 마~"
F. 루즈벨트 왈
: "근데 말야. 독일은 지금 거의 폐망 직전인데 일본이 문제다. 얘네들 좀처럼 항복을 안 해. 혹시 너네(소련)가 도와줄 수 있어?"
스탈린 왈
: "그래? 그럼 3달 이내에 일본과 전쟁을 시작할게. 그런데 그 대가로 사할린을 내주고, 만주에서 힘 좀 쓰게 도와줘~ ㅇㅋ?"
당시 루즈벨트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얼른 일본과의 전쟁을 종결시키길 원했고, 그 해답은 소련과 양 쪽에서 조여 들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또한, 루즈벨트는 필요 이상으로 일본군의 전력을 '과대 평가'하고 있었어요. 일본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 소련에게 세계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한 것이죠.
그리고 얄타회담 기간 중에 루즈벨트는 스탈린에게 '한국'에 대한 신탁 통치를 제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한반도보다는 '만주'를 더 욕심내고 있었죠.
그래서 회담 초기에는 한반도 신탁통치 제의에 별로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다가, 결국 루즈벨트의 제안을 수용하죠.
얄타회담이 끝난 지 2개월 정도 흘렀을 때, 미국의 대통령이던 F. 루즈벨트가 서거합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자, 세계 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죠.
루즈벨트는 1945년 4월 12일, 자신의 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는데, 그의 최후를 지켜본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숨겨진 애인'이었습니다.
생전에 루즈벨트는 자신의 아내인 '엘리너 루즈벨트'이 백악관을 떠나면, 자신의 애인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이곤 했는데 최후의 순간도 불륜의 현장에서 맞이한 것이죠.
그의 후임으로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이 낙점되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트루먼이 루즈벨트의 빈자리를 과연 매울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죠.
트루먼의 목소리는 루즈벨트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뛰어난 입담은 커녕 매우 무미건조한 편이었죠. 그러나 이는 우려에 불과했습니다.
'해리 트루먼'의 등장으로, 현대 세계사는 커다란 변화를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것은 바로 '냉전'이었습니다.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금연,금주,채식)보우야 하루미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