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한국사 이야기] 세종의 실책 : 화폐 개혁

대운풍 2016. 9. 6. 19:38

세종에게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에 대해 딱히 이견을 제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업적을 여럿 남겼고 과거든 현재든 이런 높은 평가는 별로 변한 게 없지요.

그러나 세종이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했고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듭했는가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도 엄연한 인간이고 옥에도 티가 있는 법이니 만큼 큰 실책을 범한 일이 있지요. 이게 막 찾다찾다 안 나와서 조그만 일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게 아닌, 당대 조선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 일입니다. 바로 화폐개혁이지요.


세종은 중국에서 시행 중인 화폐경제를 조선에도 이식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미 고려 말부터 사용되던 저화(지폐)가 사용되고는 있었으나 널리 통용되지는 못했지요. 가치가 일정치 못해 현물과는 달리 언제 종이쪼가리로 변할지 모르는 게 저화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종은 화폐 자체가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비싼 구리로 만든 조선통보를 발행합니다. 그러나 화폐개혁은 이미 시작부터 그 한계점이 명확했습니다.

가장 먼저 화폐개혁에 필요한 정부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조선은 왕도정치를 표방한 나라였기에 500년 내내 가난한 재정으로 나라를 꾸려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폐를 제조할 만한 충분한 자금이 있을 리 없습니다. 특히 조선통보의 재료인 구리가 부족했지요. 전국의 구리를 긁어모아도 부족해 사찰의 종을 녹이거나 일본에서 수입해 오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한 구리를 모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의 교역경제가 미비했다는 점도 이유로 들 수 있겠습니다. 중국이야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고 주변국과 조공-책봉을 기본으로 하는 활발한 무역이 이뤄지는 상태였으니 화폐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다릅니다. 영토가 넓지도 않은데다가 산지가 많은 지형이라 장거리 유통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요.

그렇다고 외국과 꾸준한 교역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무역을 하는 나라라고는 명나라뿐인데 이것도 조공품을 진상하고 하사품을 받는 사실상 물물교환의 방식이었지요. 국내외에서 화폐를 쓸 일이 거의 없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조선이 농본주의 사회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국부터 유교적 사농공상의 체제를 굳혀놨기에 백성들의 경제활동도 자연스럽게 농업 위주로 이루어졌지요.

이런 근본을 고치지 않고서 화폐경제가 이루어지기 바라는 건 세종의 무리수였습니다. 하지만 세종의 의지는 강력했고, 결국 화폐 외의 물건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에게는 재산을 몰수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야 뇌물 등을 통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 없는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야만 했지요.

한번은 쌀 한 되로 물물교환을 하던 사람이 관리에게 적발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곤장 100대를 맞고 수군으로 끌려가다 자결했고, 아내도 목을 매어 죽어버렸지요. 종로 시전 일대가 방화로 쑥대밭이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한양이 폭동전야로 흉흉한 지경에 이르자 세종은 화폐개혁을 포기해야만 했고, 이전의 물물교환 형태로 회귀해야만 했습니다. 20년 이상 주조하던 조선통보는 폐지되었고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요.

사실 한양을 제외하면 변변한 시장조차 없는 나라에서 화폐가 통용될 리가 없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알지 못해 그냥 지속적으로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사용하겠지 정도로 이해했을 뿐이었지요.


조선은 명종 대 즈음에서야 5일장 같은 장시가 지방 곳곳에 생겨났고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로부터 은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시장이 활성화됩니다. 그때서야 어느 정도 화폐를 사용할 구조가 형성되었지요.

그러니까 세종은 한 200년 뒤쯤에나 가능할 개혁을 하려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과 괴리된 정책은 성공할 수 없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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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5분 한국사 이야기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제정신이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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