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활약 ¶
장교후보생 학교를 나와 장교가 되고 나서 일본계로 분류되어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2세대로 이루어진 100대대에 배치되어 소대장을 맡았다. 이 부대는 행정명령 9066호로 인한 부산물인 반쯤은 인질 같은 개념으로서, 그 당시 적대국가였던 일본 출신인 사람들이 일본 본국에 협조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뽑아서 묶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대대를 창설하자마자 미국 본토로 옮겨버렸다.
그 당시 대대장이 일본인과 한국인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것과 그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있어서 전출 제의를 했지만, 그는 "여기엔 일본인도 한국인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며 같은 목적으로 싸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냥 붙어있었다고 한다.
이후 미 5군에 배속돼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된다. 100대대 병사들도 자기들이 미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해서 싸우고 싶어했다고 한다. 100대대는 이른바 "니세이 부대"라고도 불렸는데, 니세이는 교포 2세대를 뜻하는 2세의 일본발음이다. 한편 니세이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했고 전투에 몹시 적극적이었다. 부대의 모토가 "Go for Broke!"[2]였고 퍼플 하트(전상장, 부상자에게 주는 훈장) 대대라고 불릴 정도로 격렬했다. 상부에서도 100대대가 잘 싸우는걸 보고 100대대 비슷한 일본인계 대대를 더 만들기도 했다. 이게 다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의 결과물이다. 그때문인지 일본인 2세대 교포들은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후 이들 니세이부대원들에 대한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인식은 변함없이 'JAP'이었으며, 60년대에 미국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그제서야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전방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독도술에 능하며 기상천외한 전술을 써먹어서 주목받는다. 당시 김영옥 소대장이 수류탄 들고 기관총좌에 돌격하다 총에 맞자 울컥한 100대대 부대원 전부가 "반자이~!"라고 소리지르며 기관총좌에 반자이 어택을 감행해서 독일군들을 충공그깽에 몰아넣었고, 김영옥 또한 사실은 경미한 부상만 입었기에 쓰러진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수류탄을 독일군 총좌에 까 넣어 부대원을 엄호하기도 했다.
또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병 한 명이랑 같이 해가 뜨는 아침에 갈대밭을 기어가서 참호에 잠입한 뒤에 독일군 진지 안에 잠입해서 지휘부쪽 병사 두 명을 생포해오기도 하고,[3] 뱀병장님은 현실로 존재했다! 도하 작전을 일부러 2번 실패한 뒤에 3번째에는 진짜로 밀고 들어가버려서 전사자 단 한 명도 없이 피사를 점령하기도 했다.
로마 점령 이후 방면 사령관이 그를 보고 계급이 고작 중위라는데 놀라서 왜 겨우 중위냐고 물었다. 그는 진급 신청을 5번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령관이 당장 옆에 있는 대위의 계급장을 떼다가 붙여주면서 즉석 진급. 흠좀무.[4]
이후 남프랑스 전선에도 참전했고 비퐁텐느에서 상부의 캐삽질 때문에 포위당해서 총상을 입고 후방으로 호송되어 로스앤젤레스에서 휴양. 이후 회복되어서 유럽에 돌아가려다가 유럽쪽 전쟁이 종료되었다. 지금도 비퐁텐느에 있는 교회 벽에 그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한다. 유럽 전선에서 그의 활약 덕에 이후 미군 교범이 다시 쓰일 정도였다고 한다.
2.3 6.25 전쟁에서의 활약 ¶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제대하고 세탁소를 열었는데, 이게 또 당시 미국에 흔치않던 코인세탁소방식이라 상당히 잘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재입대를 하고 한국에 투입. 이때 처음으로 한반도를 밟아봤다고 한다.(…)
투입되고 나서 피난민중에서 뽑은 유격대를 지휘하며 정보 수집 임무를 맡다가 1951년 4월에 7보병사단 31연대 정보참모로 임명. 이후 별볼일 없던 31연대가 연전연승을 거두는 계기를 만들었다. 엄청난 타격을 입어서 사기도 최악이었던 연대에서 솔선수범하며 활약해 병사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5월 말부터는 적군이 공격을 해왔는데 당시 대대장은 목욕하러 후방에 가 있던 게 걸려서 짤린 대대장 후임으로, 상관이 김영옥을 승진시킬 겸 해서 실전 경험이 부족한 대대장을 앉히고, 대신 그가 실질적인 지휘를 맡게 한다. 이후 10월에 소령 진급을 겸해서 정식으로 1대대 대대장이 되어서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보병 대대장이 되었다.
1951년 6월에 오인 포격을 받아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은 뒤 8월 27일에 복귀. 이때 오인 포격을 받은 이유가 걸작인데, 포병 대대의 판단에 따르면 아군 치고는 너무 북쪽까지 진군해 있어서 적인 줄 알았다고 한다.실제로 그는 1개 보병 대대로 전선을 돌파해서 겨우 20여일만에 60km나 북진해 현재의 휴전선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쯤되면 슬슬 전투종족이 아닐까 의심스러워진다. 이후 52년 가을에 미국으로 귀국. 이때의 부상이 군경력에 있어서 큰 아쉬움을 남기는데, 당시 미군에는 전쟁지역에서 대대장이 일정개월 실전경험을 채우면 자동적으로 중령으로 진급시켜주는 제도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영옥이 개월수를 다 채우기도 전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는 중에 이 제도가 사라져버려서….
2.4 화력덕후 ¶
지원화력을 중시해서, 유사시 필요하다면 사단, 군단 포병까지 가리지 않고 하위부대 작전에 끌어다 썼다. 심지어는 독일군이 대공포를 지상 지원에 쓰는 걸 보고, (독일 공군이 박살나서) 놀고 있는 대공포 부대를 끌어다가 포병 포격 이후 근접 제압 사격에 쓰기도 했다. 지금보면 '그게 뭐?' 정도지만, 그 당시엔 생각도 않던 '독창적'이다 못해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단적인 예로 저 당시 '저 대공포 부대 좀 빌려주세요' 하니까 상관이나 대공포 부대가 '야 지상군 작전에 대공포 가져다가 뭐 하게?'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평전에 의하면 2차 대전 당시 중대급 작전에 군단 포병대를 동원하는 계획을 세우자 장교들이 다들 "부탁해봐야 소용없을 걸?" 하며 반응했다고 한다. 중대급 작전이면 사단 포병대에서나 지원 받는게 당연하다고 여길 때였으니…. 그러나 정작 군단에 포병지원을 요청하니 군단 포병대는 혼쾌히 수락한다. 당시 군단급 포병대가 대포병 사격 대비 때문에 평상시에는 포를 잘 쏘질 않았는데, 그래서 심심했던 모양. 김영옥씨의 설명을 요약하면 "군단 포병대는 사단보다 대구경 포니 화력도 세고, 자주 지원요청을 받지 못하니 사단 포병대보다 더욱 신나게 쏠 거다."라고 한다.[5] 그의 판단대로 군단 포병대는 아주 신나게 지원해줬다.
이런 든든한 화력지원을 통해 김영옥이 지휘한 부대는 2차대전 및 한국전 내내 훌륭한 전과를 쌓을 수 있었으며, 이것을 보고 미군도 포병운용에 대한 생각을 바꿔서 이 덕에 현대 미군 교리에 이런 부분이 들어가기도 했다.
2.5 전쟁 이후 ¶
당시에 미군은 선배 장교들과 후배 장교들간의 '스폰서' 관행이 만연해 있었고, 그의 인품과 능력을 마음에 들어하는 고위장성 또한 많았던 만큼 본래 유색인종 최초의 장성진급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아무 생각없이(…) 전후 한국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에 전출을 신청해버리면서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저서 《영웅 김영옥》에 의하면 거의 미군장성 퇴물집합소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김영옥을 아끼던 당시 미 군단 사령관은 뭐하는 짓이냐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결국 김영옥의 결심을 꺾지 못하고 '거긴 퇴물들밖에 없어서 널 질투해 인사고과도 제대로 안 줄 건데...'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원래 뭔가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리 후회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2.6 전역 이후 ¶
로스엔젤레스에서 살면서 여러가지 사회 봉사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쟁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돌아간다면 자기가 살던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생각했다고. 실제로 한국전쟁 때부터 직접 고아원을 만들고 병사들과 같이 고아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이 끊겼지만 결국 죽기 몇 년 전에 자신이 돌봤던 고아중 몇 명과 만날 수 있었다고.
로스엔젤레스의 한인건강정보센터, 한미연합회, 한미박물관 등을 만드는데 공헌했고 아시안 여성 포스터 홈이라는 인종차별 운동과 가정 폭력을 당하는 아시아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도 설립.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조사 위원회에도 참가하고 위안부 문제에도 활약한다.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위안부 관련 결의를 하려고 하자 일본계들이 반대 로비를 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우리가 유럽에서 싸운 게 뭘 위해서였냐?'면서 설득해 반대 로비를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미국의 일본계 내에서 2차대전 참전자들은 '큰 어르신'이라서 이들의 발언권이 컸다고 한다.
전쟁 당시 입은 많은 상처 때문에 평생동안 불편했다고 하며, 2005년 7월 방광암 수술을 위해 입원했으나 12월 29일 타계.
김영옥 대령의 부하였던 노병들. 이들은 모두 일본계 미국인들이다.
생전에 김영옥 대령과 절친한 사이였던 1948, 1952년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 리스트 새미 리(Sammy Lee 1920.08.01~) 박사. 고 김대령과 죽마고우였던 그는 이날 조사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아들들인 고인과 나는 5살 때부터 희노애락을 같이했다며, 지난 가을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 만났던 모습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했다.
추도예배 전경.
3 기타 ¶
그의 활약상은 《영웅 김영옥》이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교재에 수록되어 있는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나머지 둘은 충무공 이순신과 권율). 일본에서도 일본계 부대인 100대대의 지휘관이라는 이유로 나름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또한 2011년부터 국방일보에서 《영웅 김영옥》에 나오는 것을 토대로 기고하였으며 7월경에 기고가 끝나고 독후감을 모집하기도 했다.
2011년 6월 20일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포털 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 16인'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거론된 전쟁 영웅들이 누군지 궁금하다면 이쪽을 참조하고, 컬러사진도 같이 보고 싶다면 msn.com쪽 사이트인 여기를 참조하자. 한 명당 한 페이지씩 할당되어 있으니 김영옥 대령까지 보고 싶으면 열 번 넘게 눌러야 한다.
문제의 전쟁영웅 16인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 조지 워싱턴 -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군 최고 사령관.
- 나다니엘 그린 – 워싱턴의 친구이자 오른팔.
- 로버트 E. 리(Robert E. Lee) - 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한 사람이다.
엄밀히 따져 보면 미국에 대한 반역자(…)인데 포함되었다!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했고, 나중에 대통령까지 지냈던 바로 그 사람이다.
- 조지 S. 패튼 - 그 유명한 패튼 장군. "너희들은 나중에 손자에게 '나는 루이지애너에서 똥을 푸고 있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대신 너희들은 가슴을 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제3군에서 패튼 그 빌어먹을 개자식과 함께 진격했단다!'라고."라는 연설로 대단히 유명하다.
- Philip Kearny –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활약.
- 율리시스 S. 그랜트 -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으로, 리 장군을 물리치고 전쟁을 북군의 승리로 이끈다.
-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 리틀 빅혼 전투의 바로 그 커스터다.
이 사람만은 빼줬으면 했는데... - 피에르 G.T. 보우리가드
- 더글러스 맥아더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오디 머피(Audie Murphy) -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크게 활약하여 2년 동안에 7계급이나 승진했다.
- 윌리엄 딘(William Dean) – 6.25 전쟁에 사단장으로 참전.
- 김영옥(Young-Oak Kim) – 이 항목의 제목을 보라.
- 존 매케인 –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었고,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집안 자체가 대대로 군인이었다고 한다.
- 존 케리(John Kerry) – 베트남 전쟁에 참전.
- H. 노먼 슈워츠코프(H. Norman Schwarzkopf) – 걸프전에서 다국적군의 사령관을 맡았다. 베트남 전쟁의 재판을 우려하던 언론과 군사전문가들의 예상을 무참히 깨고 60만 이라크군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초보 역도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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