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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드득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족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도종환, 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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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열어두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 방 창문도 열어두마 한밤중 넘어올지 모르니
수도꼭지 흐르는 물속에서도 쏟아진다 엄마 엄마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빗줄기 뚫고 널 맞으러 가마
네가 오지 않으니 내가 가마 맨몸으로 가마 두들겨 맞으며 가마
물에 찍힌 음계를 밟고 나는 한 계단씩 내려가마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춤을 밟고 너는 오렴 오오 노래하며 와주렴
기다려 주렴 평생을 다해 네게로 헤엄쳐 가리니
벽이 된 바닥 미끄러지는 하늘 기어서 가리니
얼마나 추웠니 아가야 이리 오렴 젖은 기저귀 갈아줄게
다리 힘차게 차며 발랑거리는 아가,
알처럼 동그란 네 배는 영영 내일을 낳지 못하겠구나
가뭇없이 사라진 물의 나이테처럼 영영 나이먹지 않겠구나
사랑해요 저를 용서하세요,
물에 찍힌 마지막 말.
말이 되지 못한 공기방울
사랑한다 아아 아가야 용서해다오 온통 눈물뿐으로
출렁이는 저 바다처럼 우우 우릴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기다려 너에게로 갈게......
맹서뿐인 말이 끝난 곳
오늘을 불러올 태양이 없는 저 너머,
잎도 꽃도 피우지 않는 얼음정원
눈시울 붉은 아기단풍 꽃 꽃 꽃들
김해자, 아기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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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드득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족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현관문 열어두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 방 창문도 열어두마 한밤중 넘어올지 모르니
수도꼭지 흐르는 물속에서도 쏟아진다 엄마 엄마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빗줄기 뚫고 널 맞으러 가마
네가 오지 않으니 내가 가마 맨몸으로 가마 두들겨 맞으며 가마
물에 찍힌 음계를 밟고 나는 한 계단씩 내려가마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춤을 밟고 너는 오렴 오오 노래하며 와주렴
기다려 주렴 평생을 다해 네게로 헤엄쳐 가리니
벽이 된 바닥 미끄러지는 하늘 기어서 가리니
얼마나 추웠니 아가야 이리 오렴 젖은 기저귀 갈아줄게
다리 힘차게 차며 발랑거리는 아가,
알처럼 동그란 네 배는 영영 내일을 낳지 못하겠구나
가뭇없이 사라진 물의 나이테처럼 영영 나이먹지 않겠구나
사랑해요 저를 용서하세요,
물에 찍힌 마지막 말.
말이 되지 못한 공기방울
사랑한다 아아 아가야 용서해다오 온통 눈물뿐으로
출렁이는 저 바다처럼 우우 우릴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기다려 너에게로 갈게......
맹서뿐인 말이 끝난 곳
오늘을 불러올 태양이 없는 저 너머,
잎도 꽃도 피우지 않는 얼음정원
눈시울 붉은 아기단풍 꽃 꽃 꽃들
김해자, 아기단풍
가만히 있지 말아라
정우영
숨가쁘게 기다리다 끝끝내 접히고 만,
저 여리디 여린 꽃잎들에게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
태초로 돌아가는데도 말이 필요하다면
그 중에 가장 선한 말을 골라
공순하게 바쳐 올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나는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보다 선한 말 찾을 수 없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하랴.
이 통절함 담을 말 어찌 있으랴.
새벽까지 뒤척이다 마당에 나와
팽목항 향해 나직나직 읊조린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동트기 전 대지에다 속삭인다.
얼마나 하찮은지 뻔히 알면서도
웅얼웅얼 여기저기 심는다.
불귀의 영혼들아, 사랑한다
내 속삭임 듣고 싹 틔워라, 빌면서
거듭거듭 단단하게 심는다.
이제는 기다리지 말아라.
가만히 있지도 말아라.
너는 이제 자유다, 아이들아.
그러니 가만히 따르지 말고
다시 태어나라, 아이들아.
다시 돌아와 온전히 네 나라를 살아라.
너희가 꿈꾸던 그 나라를 살아라.
사랑한다, 아이들아.
내 새깽이들아.
또 다른 방주 타고 오시라
정원도
살아있는 날이 이리 숨 막히는 물 밑 나락일 줄은
밤 지새워 뜬눈으로
기진맥진 드러누운 진도 팽목항도 몰랐으리
까무러쳐 질식한 어린 꽃들을
사정없이 수장시키는 파도여 해풍이여!
갈팡질팡 절망한 채 이 땅을 버린 시신들을
맥없이 건져 올리는 것을 구조라 착각하는 나라여!
‘엄마 배가 가라앉나 봐! 나 어떡하면 돼?’
손톱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몸부림으로
목 놓아 불렀을 마지막 한사람 어머니!
저 저 자식들 앞에 두고는
도무지 불가능이 없던 그들조차
속수무책 실신한 흐느낌으로 할퀴고 파헤칠 뿐이네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타전들만 겹겹이 벽에 부딪혀
물거품 되어 흩어졌네! 갇혔네!
이럴 거면 차라리 저희에게 박쥐의 날개라도
고래의 허파라도, 물고기의 아가미라도 내려주시지요!
저 침몰하는 어린 영혼들 어쩔 것이냐!
분노한 파도 끝으로 부서진 뼈들이
포말로 일어서는 아까운 내 새끼들 어쩔 것이냐!
움직이면 위험하니 꼼짝 말라면서도
단지 숫자가 되어 수시로 변하던 304위의 연꽃이여!
기울어져 가는 선실 창밖 내다보며
그래도 다가오는 헬기 소리만 믿고 애태우던
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들 앞에 두고도
눈길 한번 안주고 도망쳐버린
선장 선원들 해경들과 선주목사와 관료들이 합작한 나라
이 음습하고 기나긴 밤을
건너는 즉시 되살아오시라!
새벽 빗줄기 무동 타고 찾아오시라!
너희들을 수장시킨 어른들의
죄 많은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오시라!
와서 이 오욕의 땅을 휩쓸고 가시라!
4월이면 흐드러지는 민들레씀바귀제비꽃들도
한 때는 방주타고 돌아온 꽃이다
그 꽃잎 속에 숨어 피었다가 모든 부끄럼 다 사라진 후에
심청처럼 또 다른 방주타고 되살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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