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bgm) 아우슈비츠 수용소 시리즈, 히틀러가 만든 살인공장의 진실

대운풍 2016. 7. 11. 09:13














 

     

 

      

 

#. 안개가 유난히도 자욱했던 1944년 6월의 어느 늦은 밤, 헝가리 유대인들을 실은 기차가 아우슈비츠 기차역에 도착한다.

 
      

 

카포 : "(유대인들을 끌어내며)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남자들은 반대쪽으로 가서 다섯 줄로 정렬해라!! "

 
      

 

루스 : "아.. 정신 없어.. 여기가 어디예요?"

 
      

 

카포 : "어디긴 어디야 아우슈비츠지! 얼른 정렬하고 가져온 짐은 기차에 그대로 두고 절대 챙기지 마라. 나중에 전해줄 것이다!!"

 
      

 

#. 열차에서 내린 루스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정렬하는 모습을 본다. 승강장의 끝에는 큰 굴뚝이 보였고, 그 위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SS 의사 : "(루스 가족에게) 어디 보자.. 너희는 왼쪽!! 꼬마야. 너는 오른쪽!! 다음~!"

 
      

 

#. 승강장의 SS 의사는 막대기로 루스 가족을 왼쪽, 오른쪽으로 분류했다. 건장한 16세 소녀였던 루스는 오른쪽 줄에 섰고 나머지 가족은 모두 왼쪽이었다.

 
      

 

#. 왼쪽 대열에 섰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아이들, 노인, 병자들이었고 루스가 섰던 오른쪽 대열은 젊고 건장해 보이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루스 : "왜 우리 가족을 분리하는 거예요? 가족들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죠??"

 
      

 

카포 : "멍청한 헝가리인아! 여기가 아우슈비츠라는 거 몰라? 너네 가족들은 지금 산 채로 불에 타는 화형장으로 가는 거라고!!"

 
      

 

#.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 루스는 가족들을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샤워를 하고 막사로 인솔되었다.

 
      

 

아우슈비츠의 승강장.. 이곳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최악의 비극 속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있었다...!

 
     

 

     

 

     

 

      

 

▣ 아우슈비츠에서의 첫째 날
: 죽음의 승강장, 즉시 죽을 사람과 곧 죽을 사람

 
      

 

아우슈비츠... 사실 이 명칭은 폴란드어로 '축복받은 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은 전혀 축복받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온갖 저주와 슬픔이 도사리는 현세의 지옥...

 
      

 

죄 없는 생명들을 수없이 학살하는 '살인 공장'들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죠. 그것은 나치 독일이 건설한 3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말합니다.

 
      

 

수용소와 2km 떨어진 아우슈비츠 역에는 하루 평균 1~2대의 열차가 도착했는데, 언뜻 보면 평범한 기차로 보이지만 이 기차에는 사실 화물이 아니라 '사람'이 빼곡히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열차에 실려온 사람들 중에 2/3는 유대인들이었고 나머지는 집시, 전쟁 포로, 동성애자, 정치범 등이었어요.

 
      

 

이들은 왜, 어떤 이유로, 연고도 없는 이 낯선 땅에 실려왔을까요?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의 뒤틀린 운명은 매우 신속하게 가려졌습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선별 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이죠.

 
      

 

마치 학교에서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서있는 학생들처럼.. 도착한 유대인들은 5열로 왼쪽과 오른쪽 양 갈래로 줄을 섰는데,

 
      

 

왼쪽 대열은 아이들, 노약자, 병약해 보이는 환자들 등의 '비(非)노동인력' 이었고, 오른쪽 대열은 젊고 건장한 '노동 인력'이었죠.

 
      

 

이렇게 유대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모든 선별 작업이 대부분 2시간 안에 이루어졌으며,

 
      

 

총 인원의 80 ~ 85%는 선로에 내리자마자 곧장 가스실로 직행했고 나머지 나머지 20~25%만이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기에 적합한 인원으로 분류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죠.

 
     

 

     

 

      

 

즉 1차 선별 작업에서 노동 인력으로 분류되어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사형집행 날짜가 즉결 처형 유대인들보다 '조금' 연장된 것 뿐이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선별 작업은 나치스 친위대(SS) 소속 의사들의 담당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릴 목적으로 배운 의술을 사람을 살인하기 위해 활용한 셈입니다.

 
      

 

열차에서는 간혹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는데, SS는 아기를 발로 걷어차거나 총으로 쏴서 즉결 처형했습니다.

 
      

 

또 이러한 비인간적인 모습과 가족과의 분리로 인해 유대인들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SS는 모두가 안전한 보호 수용소로 갈 예정이니 걱정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곤 했죠.

 
      

 

나치스 친위대(SS) 왈 : "여러분들! 지금 왼쪽 대열에 계신 분들은 목욕을 하러 간 것 뿐이니 1시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왼쪽에 줄을 섰던 사람들이 끌려간 곳은 목욕탕이 아니라, 자이클론B가 터지는 '가스실'이었기 때문이죠.

 
      

 

비 노동인력이 살해당하는 동안, 살아남은 소수의 유대인들은 소지한 모든 물품들을 반납했고 머리카락이 잘렸습니다.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게 말이죠.

 
      

 

그 다음 절차는 왼쪽 팔 하단부에 숫자로 된 문신이 새겨졌고,

 
      

 

문신이 완료된 인원들은 곧바로 철조망을 지나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막사를 배정받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시설
: 처참한 수준의 막사와 화장실

 
      

 

위 짤은 당시 유대인들의 막사 모습입니다. 막사는 창문이 없는 형태의 목조 건물이었고, 4층으로 된 간이 침대가 왼쪽 오른쪽 편에 위치해 있었죠.

 
      

 

간이침대의 길이는 약 1.8미터였으며, 성인 남자 6명이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비좁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번갈아가며 오른쪽과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야 했어요.

 
      

 

또한 간이침대 한 개당 짚더미(이불)가 하나가 있었는데, 이것도 크기가 작아 가장 바깥쪽에 누워 자는 사람들이 새벽에 이리저리 끌어당겨야 했죠.

 
     

 

      

 

또한 화장실은 2백 명이 동시에 볼일을 볼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화장실이지.. 대변 시설은 그냥 콘크리트 위에 널빤지를 깔고 큰 구멍을 낸 것이었죠.

 
      

 

그리고 휴지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옷을 찢어 사용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 밤중에 서로의 옷을 훔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수감자들은 하나의 사발을 받았는데, 이 사발의 용도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빨래를 하고, 수프를 담고, 밤에 용변을 보는 것으로 사용(오직 아침에만 용변이 허용됨)되었죠.

 
      

 

이처럼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유대인들에게 이 모든 생활은 받아들이기 힘든 환경이었어요. 하지만 전에 누렸던 일상이나 직업, 고향, 가족, 재산 등은..

 
      

 

아우슈비츠에 온 날에 왼팔에 문신이 새겨지는 시점부터 모두 말소되는 개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하루빨리 받아들일수록 하루라도 더 생존할 수 있었죠..

 
      

 

▣ 아우슈비츠에서의 식사
: 벌레보다 못한 형편없는 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아침과 점심에 0.5리터 정도의 수프가 배급되었습니다. 수프는 전형적인 포로 수용소 음식의 조리 방법을 따랐는데,

 
      

 

수프에는 감자와 무, 양배추 조각들과 최소한의 고기 또는 종이 쪼가리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맛을 내기 위해 밀가루 영양소와 함께 끓여졌죠.

 
      

 

배급 시에 수감자들은 마지막 줄에 서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수프 위쪽의 1/3은 물이었고, 아래쪽에 건더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은 조금 더 푸짐했는데 모두가 300g의 빵을 수령했고, 가끔 부식으로 소시지와 마가린 한 숟가락을 받았죠.

 
      

 

하지만 이마저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직원들이 몰래 빼돌리는 통에, 안 나오는 날이 나오는 날보다 많았습니다.

 
     

 

     

 

      

 

수감자들은 매일 배고픔과 싸워야 했습니다. 배고픔의 단계가 심해질 경우, 가장 먼저 졸음과 무감각 증세가 나타났으며

 
      

 

그 후에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력이 쇠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은 본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것을 의미했죠.

 
      

 

이러한 배고픔으로 인한 신경쇠약 이 외에도, 수감자들은 많은 질병에 노출되었습니다. 발진티푸스와 파라티푸스, 그리고 폐결핵, 습진 등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대략 3~4개월을 보내고 나면, 온갖 배고픔과 질병에 시달려 살아남은 인원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어느 유대인이 길을 가다 건장한 나치스 친위대와 부딪치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일도 가끔 벌어졌으니까요.

 
      

 

아우슈비츠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매일이 오직 생존 아니면 죽음과의 싸움이었고, 미래 계획을 짠다거나 희망을 품는 일은 더더욱 일어날 수 없었어요.

 
      

 

따라서 이러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잔혹한 환경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수감자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암담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죽어가는 것이 아우슈비츠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죠..

 
     

 




















BGM정보: 브금저장소

브금: Handel - Sarabande

자료출처: Pikicast "Curious Park"님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금연,금주,채식)보우야 하루미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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