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스크랩] 근현대사 최악의 인물 이승만의 진실

대운풍 2017. 8. 20. 09:15

이승만(1875~1965)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쪽은 독립운동을 주도한 대한민국의 국부라고 치켜세우고, 

이승만을 부정하는 쪽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국민을 학살한, 대통령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를 얕게라도 공부해 본다면, 이 논란 자체가 굉장히 우스운 일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승만은 빨아줄 가치가 없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손꼽히는 쓰레기입니다.

왜 그런지는 굉장히 많은 이유가 있지만, 너무 많기 때문에 '자국민 학살'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잡한 사연도 많은지라 제가 아는 선에서 간단히 서술하였고 일부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1. 제주 4.3사건

이승만은 제헌국회 내에서 간접선거 방식을 통하여 1948년 7월 20일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좌우익 갈등은 존재했고, 이것이 민간인 학살이라는 형태로 최초로 드러난 사건은 제주 4.3사건입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민들의 3.1절 기념행진에서 경찰의 발포로 인하여 주민 6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주도민들과 남조선로동당(줄여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연합하여 3.10 총파업을 시작으로 반경찰 활동을 전개합니다.

당시 경찰은 우익세력들로 이루어졌고,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안그래도 민심을 얻지 못하였는데, 발포사건이 터지니 당연히 주민들이 반발할 수 밖에요.

이 소식을 들은 육지에서는 서북청년단(우익청년단체)과 응원경찰대를 제주도로 파견했고, 이들은 제주도에서 주민들을 무차별검거, 부녀자강간, 재물 약탈, 무력행사 등 각종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를 참다 못한 주민들과 남로당 제주도당은 1948년 4월 3일 경찰서를 습격하고 미군정과 경찰 우익단체를 향해 무력항쟁을 할 것을 천명합니다.

이 때 주민과 남로당 제주도당이 내건 요구사항은 만행금지, 남한 단독정부 수립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 였습니다.

항쟁 초기에는 양측이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결렬되고 미군정과 조병옥 경무부장 휘하의 경찰들은 "빨갱이면 무차별 살상하라"라는 진압정책을 펼쳐 많은 제주도민들이 죽게 됩니다.

대부분 제주도민들은 사회주의 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조국의 평화적 단독정부수립을 원했지만, 이는 이승만 정부에 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빨갱이라는 죄목을 쓰고 총에 맞아 죽습니다.

이 학살과정에 대해 자세히 쓰자면 논문이 나올만큼 복잡하기 때문에, 대충 피해상황만 언급하자면

2003년 발간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에 따르면, 당시 제주도민 27만명 중 10%가 넘는 3만명 정도가 희생을 당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또한 살아남은 도민들은 군사정권 하에 정부에서 조사관이 2년마다 나와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도 하고, 그들의 자식들은 사관학교 진학이 금지되는 등 각종 연좌제에 얽혀 긴 시간동안 고통받았습니다.

제주 4.3사건은 뒤에 언급할 여순사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2. 여순사건

1번에서 언급한 제주 폭동(이승만의 입장에서)을 진압하라고 출동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가 일부 군 내 좌익세력의 주도로 1948년 10월 19일 출동명령을 거부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당시 경찰은 우익세력이 주를 이뤘고, 군은 한때 독립운동군 혹은 좌익 우익이 혼합된 집단이었습니다.

좌익과 독립운동세력들은 친일세력과 연관된 우익을 기꺼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군정과 경무부의 지시로 군대가 출동명령이 떨어지자 지창수, 김지희 등 일부 좌익이

"동족상쟁하는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킨 후 여수 순천 광양 등을 점령하고 중앙에 맞섭니다.

이는 채 열흘도 안되어 진압당합니다. 1000여명의 반란군은 즉결처형 당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군 내부의 좌익세력을 소탕하는 숙군사업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박정희가 남로당프락치로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용케 살아남아 후에 대통령이 되지요ㅋㅋㅋ

이승만은 보도연맹을 만들고 좌익사상에 물든 분자들을 사상전향 시킨다는 명목 하에 좌익인사 혹은 좌익인사와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사람들, 의심인들 모두 강제로 가입시켜 몽둥이로 맞아가며 반공교육을 받습니다. 반인륜적 행위의 피해자들이지요.



3. 국민보도연맹 사건

2번에서 언급한 국민보도연맹이 1949년 결성된 후 1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승만은 전쟁 발발 후 이틀 뒤 재빨리 대전으로 몸을 피하고, 한강대교를 폭파하여 한강 이남의 국민들의 피난을 막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아는 왼쪽의 한강대교 폭파사진은 사실 대동강철교입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과 국군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대동강철교를 폭파시켜 피난민들이 매달려있는 모습이고, 이를 사진으로 찍은 기자는 1951년 퓰리쳐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보도연맹 가입자들은 전쟁 과정에서 누군가의 지시로 인하여 학살당합니다. 

우익의 생각은 "보도연맹 놈들은 빨갱이였다. 전세가 북괴뢰들에게 유리해지면 우리 등에 칼을 꽂을 것이다. 그러니 미래의 화를 막으려면 다 죽여놔야 한다"였고, 이를 실천합니다.

당시 보도연맹 가입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최소한 10만명이 학살되었다고 역사학계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도연맹원 학살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은주가 김수로에게 죽음을 당하는 모습입니다.

북한군들이 먹고 살라고 보급한 쌀을 받았단 이유만으로 빨갱이라며 총맞아 죽는 것이 전쟁에서는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살은 이후에 또다른 좌익 주도의 보복학살, 또 다른 학살 등으로 연결되어 끊기지 않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4. 거창양민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과 비슷한 이유로, 전쟁 중 거창 근방에 빨갱이가 침투했는데 찾기 힘들기 때문에 민간인을 모조리 죽여버린 무식한 사건입니다.

500명가량이 집단으로 총살당했으며, 이런 학살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너무 많고 몰살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미처 알려지지 않은 학살사건도 많습니다.

어찌보면 거창양민학살은 그나마 알려진 운이 좋은 케이스입니다.

노근리양민학살은 미군에 의해 발생한 학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5. 국민방위군 사건

한국전쟁 초반은 남한이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밀립니다. 물론 육지만요. 낙동강까지 북한군이 왔을 때도 바다와 하늘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이 38선을 치고 올라가 반격하였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 됩니다. 이 때 후퇴과정에서 병력손실을 방지하고자 젊은 남성을 국민방위군에 편입시켜 후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취지는 좋습니다만, 이 50만명에 달하는 국민방위군들을 감당할 숙소,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부산까지 끌고 내려가다가 겨울까지 겹치면서 9만명이 넘는 군인이 굶거나 얼어죽어 버립니다. 발진티푸스 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많습니다.

남은 병력들도 받아줄 부대가 없다면서 부산 울산 등을 뺑뺑이 돌게 되구요.

돈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없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국민방위군에 할당된 예산의 대부분은 장교들이 횡령하다가 걸려서 후에 공개총살 당합니다. 방산비리의 원조 격이죠.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청년들도 간수 못하는 정부 그리고 그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과연 국부의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을까요?



이 외에도 대전형무소 정치범학살, 마산항쟁발포, 깡패를 동원한 고려대생 시위자 폭행 등 국가의 기본 의무인 국민의 안전 보장을 전혀 지키지 않은 정권의 수장이 이승만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정적과 반대세력 그리고 그와 관계없는 무수히 많은 민간인까지 죽여버리면서 대통령을 12년동안 해먹었습니다.

학계의 추정으로 이승만 정권시절 무고하게 학살된 국민의 수가 20만명인데, 한국전쟁 3년동안 전사한 국군의 수가 13만명입니다.

전쟁보다 더했다고 볼 수 있는게 이승만이 통치하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승만을 국부로 치켜세운다는 것은 민주주의공화국에 모순되는 행위이며 나라의 근본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만으로도 이승만을 빨아줘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추가 - 한국현대사를 교양 수준에서 배우고 싶으시다면

서중석 교수가 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책을 추천합니다.

혹은 예전 엠빙신 리즈시절인 MBC에서 1999년부터 방영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토렌트나 유투브에서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樂 SOCCER 귄도안 펌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호호호후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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