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 장문 감동주의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어렸고, 그는 서툴렀다. 어린 사람들만의 특권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시시했었고 남자라는 존재들도 딱 그만큼으로 쉬웠다.
그는 서툴렀다. 흔히들 ‘썸을 탄다’고 이야기하는 그 기간 동안에도, 나는 그가 내게 마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늘 혼란스러웠다.
막상 나가보면 딱히 할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불러내는 건지. 강의가 끝나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나를 스쳐가면서, 왜 내가 결석한 날에는 <오늘 안와? 지금 출석 부르는데>라며 메시지를 보내는 건지. 그의 마음이 궁금해서 “밥 먹을까요?”하고 물어보면 “미안 나 바빠.”라고 대답해놓고는, 하필 내가 바쁜 날만을 골라 “혹시 오늘은 어때?” 라고 되묻는 건지.
도대체가 내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어렸고, 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시시했었고, 저런 사람과 연애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었다.
‘호기심’
그러니까, 그를 향한 내 첫 마음은 그런 거였다.
“나, 그 사람이 궁금해.”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그는 내게 점점 특별한 존재가 되어갔다. 도저히 속을 읽을 수가 없는. 무뚝뚝한 만큼 자상한. 보고 있을 땐 모르겠는데 막상 뒤돌아서면 자꾸 생각나는, 그런 사람.
다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늦은 시간까지 통화를 하기 시작했고, 짧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그는 내게 “잘 잤어?”라며 안부를 물었다.
가끔은 노래를 보내주기도 했었는데 내 스타일의 음악들은 아니었지만, 듣고 있으면 어쩐지 행복도 했었다.
하지만 미친 듯이 설렌다거나 혹은 눈물이 날 정도로 보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거만했으며, 누군가의 마음을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를 알아가는 게 즐거웠다.
기쁠 땐 저렇게 웃는구나.
오래된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진솔한 사람이구나.
그가 지금껏 살아온 많은 이야기들을 내게 해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나도 그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나의 이야기들은 시시해보였다.
다만, 엄마에 대한 나의 애증을 최초로 발견한 건 다름 아닌 그였다.
“있지, 우리 엄마는 요리를 정말 못 해. 그리고 사실은 밥도 잘 안차려줘. 엄마를 만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쇼핑이야. 근데 사실 내게 필요한 건 따듯한 밥상이거든...”
다행히 그는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였고, 그래서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종종 갓 지은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감자전과 카레. 적당히 매운 오징어볶음. 김치를 넣은 칼칼한 콩나물 국. 그러니까, 나를 위해 만들어준 다정한 식탁.
지금에 와서 이런 이야기는 우습지만, 사실 그의 자취방에는 식탁이라고 불릴 만한 판자대기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 맨바닥에 음식들을 주르륵 나열해두고는, 밥그릇에 밥을 퍼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린 채로 상을 차렸다.
하지만 부엌에서 감자를 깎는 그의 뒷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지, 그가 나를 위해 차려준 ‘방바닥 식탁’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이지 앞으로도 나밖에 없었으면 좋겠다. 영원히.
세월이 흘러, 엄마와는 어느 날 화해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의 일이다. 쇼핑을 끝내고 삼겹살을 먹으러갔다가, 술을 한 잔 하고는 화해했다. 엄마는 내게 “네가 첫 딸이라서 내가 많이 부족했어. 미안하다.”라고 울먹였다. 나는 “괜찮아 엄마, 사실은...”이라고 말하고는 펑펑 울었다.
괜찮아 엄마. 사실은 내게 진짜 맛있는 콩나물국을 끓여준 사람이 있었어. 너무 좋아서, 너무 맛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했어.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시간이 흘러 생각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불행해졌다. 어렵사리 취직을 하고도, 그 또한 불행해져갔다. 나는 내 맘 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힘들었고 그는 막상 부딪힌 사회가 너무도 힘겹고 버거운 곳이었음을 깨달아가며 점점 지쳐갔다. 불행한 나는 방황했지만 그는 흔들리는 나를 꿋꿋이 잡아주었다. 나는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한 내 감정들 때문에 매일 밤을 울었고, 그는 그런 나를 달래느라 꾸준히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은 어린 나이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미성숙했고, 그렇게 어리석은 채로 나이만 먹었다.
그런 나에게 그의 사랑은 '늘 그 곳에 있는 것'이 되어갔다. 그는 내게 상처를 치유해준 사람이었고, 세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아빠 같은 사람이었고,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었고,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나는 여전히 내 멋대로 굴었다.
결국 어느 날 우리는 헤어졌다. 습기가 공기 중에 꽉꽉 차있었던 장마철이었다. 지금에 와서 절실히 후회되는 건, 헤어지는 그 날도 나는 그에게 펑펑 우는 꼴만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지 말걸. 웃어줄 걸. 살아가다 나를 떠올렸을 때, 웃는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마지막엔 따뜻하게 웃어줄 걸.
헤어지던 그 날 “우리 왜 헤어져야 해? 왜 마음이 변했다고 이야기하는 거야?”라며 물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왜 나를 떠났는지. 왜 내가 싫어져버렸는지. 내가 그를 얼마나 질리게 했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우리는 각각 스물다섯과 스물여덟에 만났었다.
나는 어렸고, 그는 서툴렀고, 서로를 사랑했다.
그때의 나는 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시시했었고,
그는 나를 꽃보다도 어여쁘게 사랑해주었다.
언젠가의 선술집에서 내 손에 쥐어주었던 플라스틱의 꽃. 시들지 않을 줄만 알았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너와 나.
그와 헤어지고 나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버렸다-가 다시 주워들고 집으로 왔다. 플라스틱 꽃도, 편지도, 인형도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다. 이사하던 날 엄마는 내게 “그걸 뭐 하러 갖고 있어? 버려버려!”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엄마는 아직도 날 몰라. 나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지!”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저게 미쳤나’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을 뿐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우리는 각각 스물일곱과 서른에 헤어졌다. 시간은 화살같이 빨라서, 나는 이제 그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날 들을 살아냈다. 물론 여전히 어리고 어리석지만, 나를 만나던 그 시절의 너 또한 어렸음을 이제는 안다.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살다보니 변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끔 진저리가 날 때가 많다.
'내가 아직 그리워하는 걸 알면 너는 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할까? 이런 내가 나도 싫은데 너는 얼마나 나를 싫어할까?’ 라고 생각하면, 문득 하염없이 외롭고 슬퍼진다. 그러니까, 아직도 변하지 못한 내 마음이 나조차도 가끔 진저리나게 싫은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순간도 분명 있다. “영원한 것은 결국 ‘영원하다’라는 말 뿐이지”라는 친구의 말이 무기력해지는 그런 사람이, 내게는 분명 있다. ‘영원’이라는 단어 말고는 대체될 수 없는 시절이, 내게는 있는 것이다.
인생이 추웠던 그 시절. 네가 그토록 아름다웠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시절. 그 시절에 내게 찾아와 나를 꽃으로 대해준 네가 고맙다.
너와 헤어지고도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몇 번 반복했었지만, 감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는 것.
슬프지만 변하지 않을,
나의 스물다섯.
그리고 너의,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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