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독일군을 변호하기 위해 적는것이 아닙니다.
단지 세간에 알려진 독일군=악당 이라는 인식에 대한 의문을 품고 적는 겁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승자의 행동은 정당화 되고,패자의 행동은 범죄가 됩니다.그럼 범죄 또한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선 소련군의 독일군 포로와 관련된 기록입니다.
"(전략)전우의 말로는 저들이 바로 몇 시간 전에 무장친위대원 40명을 대열에서 골라내 일렬로 세우더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차례로 총살했다고 했다.또 다른 전우는 자기도 무장친위대원 20명이 총살 당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뚱뚱한 코미사르 하나가 이리저리 대열을 흝고 다니면서 수색했다.그 옆에는 키가 장대같이 크고 잔인하게 생긴 녀석들이 동행하고 있었다.코미사르가 몇몇 포로를 가리켰다."너 SS! 너 SS!"그러자 키 큰 녀석들이 금발에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지목당한 불행한 병사들을 끌어냈다.한 녀석이 그들의 오금을 발로 차 앞으로 쓰러뜨리고는 총을 쏘았다.그것으로 끝이었다."
-폭풍속의 씨앗,헤르베르트 브루네거
물론 소련군이야 이런 제네바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고,또 무장친위대는 법적으로 군대에 해당하지 않기에 죽여도 뭐라고 말은 안했습니다.근데 여기서 제가 묻고 싶은 사실은 과연 저 금발에 키가 크다는 이유로 지목당한 이들이 무장친위대원일까요? 저자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는 저 상황에서 자유 러시아 군단 병사로 오인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종전 이후가 아닌 전쟁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역시 폭풍속의 씨앗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략)그로 말미암아 심페로폴 갈림길에 있던 국방군 야전병원이 모든 부상자,의사들,간호사들과 함께 소련군 수중에 들어갔다.부상자들과 의사들은 예전에 호텔로 사용되던 여러층짜리 건물의 창 밖으로 내던져진 뒤 영하 20도의 추위에 물세례를 받아야 했다.간호사들은 집단 강간을 당한 뒤 음부에 큰 못을 박아 나무 바닥에 박힌 채 죽음을 당했다.나중에 페오도시야를 다시 점령하고 전선으로 행군하던 무장친위대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얼어붙은 시실들 옆을 지냐야 했다."
이정도입니다.과연 이런 행동을 우리는 정당화 할 수 있다고 할까요? 이 내용은 170보병사단 출신의 두 다리 잃은 병사가 증언한 내용이긴 하지만 소련군의 범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내용입니다.
군인이 이 정도인데 민간인의 대우? 더합니다.
"시작은 굼비넨 마을이었다.여덟 살 어린 소녀에서 여든 살의 노파에 이르는 모든 여자가 강간을 당한 뒤 대부분 살해되었다."
뭐 이정도 가지고 싶겠지만 더 자세한 내용도 나와요.들려드려요?
"(전략)지금까지 줄독 행군 대열을 따라 말을 타고 왔던 장교 한 명은 소녀한테서 따귀를 맞았다.그러자 그들은 곧 소녀를 덮쳐 야영지 외부에 있는 헛간으로 끌고갔다.우리는 말없이 소녀의 날카로운 비명을 듣고만 있었다.비명은 갑자기 중단되었다.잠시 후 소련군 병사들이 헛간에서 나와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중략)우리 예비군이 발견한 소녀는 아랫도리가 벗겨지고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작업대에 묶여있었다고 했다.입에 물린 속옷은 피투성이였고 얼굴은 얻어맞은 자국이 역력했다고 했다."
독일군이 악당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변명거리로 "ㄱ...그건 제네바 협약에 소련이 가입 안해서잖아!"라고 하실 겁니다.미군이요?
"운동장에 독일군 포로들이 수천 명이나 집결해 있었다.앉거나 눕는것은 불가능했다.포로들을 꽉꽉 태운 트럭들이 속속 들어와 사람들을 내려놓는데도,배식은 주어지지 않았다.미군은 사람들을 운동장에 마구 밀어넣었고 음식은 타고 있었다.게다가 단 한방울의 물도 주어지지 않았다.포로들이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하자 그제서야 미군은 작은통에 든 물을 주었다.(중략)며칠 후,사지절단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도 왔다.병원에 있던 군인 전체가 이곳으로 이송되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붕대도 제대로 감겨있지 않은 상태였다.우리는 담요를 잘라 그들에게 붕대 대신 매어 주었다.그러나 그들은 비참하게 죽었다.그리고 우리는 아무 손도 쓰지못하고 그들이 죽는것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다.
밤에는 수용소 내에서 움직이려고만 해도 목숨이 위험했다.미군은 우리가 화장실에 가려고만 해도 사격을 가해댔다.나는 3명의 아군 포로가 이런 식으로 죽는 것을 직접 보았다."
-진흙속의 호랑이,오토 카리우스.
"수색하던 미군이 여기저기 흩어진 여인과 아이들의 사진들을 밟고 지나가자 비쩍 마르고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남자가 사진 한 장을 몰래 군화 속에 집어넣으려 했다.그러나 땅딸막한 미군이 그것을 보았다.그는 사진을 빼앗아 찢어버리더니 늙은 남자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매섭게 후려쳤다.남자는 바닥으로 쓰려졌다.미군은 화를 내면서 풀밭에 떨어진 찢어진 사진을 마주 짓밞았다.그러고는 만족스러운 듯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검열을 하는 동료에게 돌아갔다."
-폭풍속의 씨앗,헤르베르트 브루네거.
보시다시피 미군도 소련군과 별반 다를건 없었습니다.밴드 오브 브라더스 서적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그랜트에게 권총을 쏴 그랜트를 죽일뻔했던 미군 병사는 체포 당시 오스트리아 여자 한명을 강간할려다 체포됬다고 나오며,드라마판에서는 독일군 포로 학살 장면도 나옵니다.주로 독일군의 학살에 대한 보복성 학살이 주를 이루었고 학살을 집행한 이들을 처벌했다거나 하는 기록 그딴거 없습니다.
영국군이나 자유 프랑스군은 개념인이니 안그랬을거 같냐구요?
이탈리아 전선의 생지옥으로 악명높던 몬테카시노 전투 이후 자유 프랑스군은 인근 지역에서 50시간의 약탈을 허용했고 이때 모로코 병사들은 2천여명의 여성을 강간했고 800여명의 남자들을 학살했습니다.그리고 마을을 불태우고 재물들을 약탈했죠.이 피해자들 중에는 지금도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 이들이 있는데다,이 사건은 1960년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두 여자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부대는 후에 슈투트가르드에서 다시한번 강간,학살,약탈을 벌인데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이들의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군이요? 더했습니다.
영국 공군 원수 아더 해리스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독일 민간인만 50만명인데다,이것도 모자란지 탄저균 폭탄을 함부르크에 투하할려고 한게 영국이었습니다.폭격 자체가 정밀 폭격에 한계가 오자 그냥 도시 하나를 쓸어버리라는 이러한 발상으로 죽은 사람이 50만명...아니 더 됩니다.이건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과연 독일군만 악당이고 악마일까요?
왜 우리는 연합군의 행동에 대해서는 무색한 걸까요? 아니 왜 연합군의 전쟁 범죄는 넘어가는 걸까요? 승리했으니까? 아니면 독일은 외국을 침략했으니까?
그 이유는 세간에 알려진 독일군의 이미지,매체에 알려진 독일군의 이미지가 악당으로 묘사되는것 말고는 없겠지요.
이상입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967년 춘천 사진들 (0) | 2018.02.16 |
---|---|
[스크랩] 1950년 빼앗겼던 독도 탈환 현장 (0) | 2018.02.05 |
[스크랩] 일본인의 눈으로 본 60년대 청계천 모습. (0) | 2018.01.27 |
[스크랩] 유명 회사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자 (0) | 2018.01.23 |
[스크랩] 도요타가 아프리카에서 잘 나간 이유 (0) | 2018.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