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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가시나(혹은 가시나딸), 헛간은 허깬, 지붕은 덮이(덥이?) 아버지는 아파치, 바로 북미 인디언 언어이다. 큰 내터가(넓은 냇가)를 큰네터갓그러나 무조건 연관시키는 것은 성급할 것 같고, 북미 인디언을 크게 다섯 종류로 나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페루 사람들은 지금도 고시례를 한다. 몽골, 북미인디언, 한국인이 고시례를 한다. 폐루 인종은 몽골반점이 있으며, 이동시기를 짐작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적어도 고시례라는 행위를 가져가서 계승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 문화의 주인공들이 이주한 시기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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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대의 피라미드가 북미에 있는데, 속은 돌로 겉은 흙으로 덮혀있고 너무 커서 처음에는 산으로 여겨졌다. 이것이 피라미드라는 옛이야기가 전해져오다가 드디어 발굴이 되었다.(EBS방영 다큐멘터리. 신으로 가는 계단 참고)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고 머리카락이 까만 인종이 만들었다. (일리노이주 슈피리어호 주변에 있는 피라미드를 말함. 현재 발굴되어 박물관에 유물이 전시되어 있음) 부장품 중에는 원양어업에 사용되는 낚시바늘 등이 있고, 조개껍질 2만개 위에 놓여진 인디언 시신이 발견되었다. 피라미드 이외에 인디언 유적에서 편두가 발견되기도 한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짚신 70여 켤레가 발견된 적이 있다. 현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형태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 |
인간 조직적합성항원 연구의 세계적 중심기관인 미국 UCLA의 HLA센터 교수들이 연구해 본 결과 한국인과 인디언들이 100퍼센트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HLA A2 나 B62, C3 와 같은 것은 한국인 외에는 세계 어디에도 안 나오는데 인디언들에게 서는 나옵니다.
유럽인과 미국인 등이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아틸라(훈족의 통치자)는 환지중해 국가를 건설하여 100년간 유지되었다. 독일 ZDF방송사의 2004년 제작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훈족은 현재의 한국인과 가장 흡사한 문명을 가진 문명이다.
인디언들의 윷놀이 북미 인디언들에게도 우리처럼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윷이 있다.
작은 윷을 바구니에 담아 흔들다가 던지는 것도 우리와 같다. 둥근꼴이나 네모꼴의 윷판(밭 수는 우리보다 많다)이 4구역으로 나뉘는 것과, 상대방 말에 자리를 빼앗기면 죽은 말이 되어 처음 출발점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나,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노는 것도 우리와 같다.
그러나 종족에 따라 5 ~ 6개의 윷 가락을 쓰고, 윷판 또한 매우 복잡한 점 등은 우리와 다소 다르다.
팽이와 투호, 굴렁쇠 팽이의 형태나 노는 방법도 우리의 것 그대로이다. 채로 쳐서 팽이를 돌리고 서로 부딪치면 늦게까지 도는 쪽이 이긴다.
또 채를 쓰지않고 몸통 가운데 박힌 기둥을 손가락으로 힘껏 비벼서 돌리는 방법도 우리와 같다. 팽이를 만드는 재료를 나무뿐 아니라 뿔이나 돌 그리고 진흙으로 빚어 만들고, 위나 옆 면에 색칠을 하는 것도 우리와 같다.
이 밖에도 그들은 투호, 자치기, 고누, 실뜨기, 그림자 놀이, 굴렁쇠 따위의 놀이도 했으며, 또한 우리처럼 불이나 연기가 잡귀를 물리친다는 귀신관념도 있었다.
치우천왕의 제2 순행단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지역의 문화가 이처럼 닮은 꼴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치우천왕이 보낸 제2순행단과 같은 선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역 간의 문화를 비교할 때,가장 유력한 단서가 되는 것은 물질문화(物質文化)이다. 인류학에 있어 물질문화는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 못지 않은 중요성과 객관성을 가진다.
따라서 그들의 물질문화는 곧 마고성 출성 후 황궁씨, 유인씨, 역대 환인, 그리고 치우천왕을 비롯한 역대 환웅과,고조선 시대까지 면면히 이어졌던 순행자들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모국의 선진문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고고학자 A.홈볼트가 "아메리카의 많은 신화, 기념물, 우주 발생에 관한 사고는 동아시아의 것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이것은 태고 시대에는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말해 준다." 라고 하여,치우천왕의 제2순행단이 미주로 건너 갔을 수도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 또 프랑스의 고생물학자이며 지질학자인 P.티얄 드 샬던도 "몽골.만주.시베리아 그리고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대는 단일문화권이 존재했다." 라고 하여 한층 더 이러한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원주민들이 어디에서 언제쯤 건너 왔느냐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 "처음의 미국인"이라는 책을 저술한 G. H. S. 부쉬넬의 견해는 아래와 같다. [신세계로 인간이 이주하는데는 지리와 기후 등의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신대륙에 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베링해협이었다. 배가 발명되어지기 전에 인디언들은 마른 땅을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대략 B.C. 25,000년에서 9,000년 사이에는 동북아시아와 알래스카가 넓은 평원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위스콘신" 이라고불려지는 제4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면이 훨씬 낮았고 물은 얼음에 잠겨 있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캐나다와 미국의 북부 지방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고 넓은 평원으로서 아시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가 대략 B.C. 25,000년경이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쉽게 알래스카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B.C. 18,000년경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 버렸는데 그것이 약 8,000년 동안 계속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B.C. 8,000~5,000년 그 이후부터는 기후가 따뜻해져서 빙하기가 끝났다고 본다. 추운 날씨가 지나가고 B.C. 5,000~2,000년 사이에는 현재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었을 것으로 본다. B.C. 8,000~5,000년사이에 기후가 따뜻해져서 대양이 물로 가득 채워짐에 따라 이제는 육지로 건너오지 못하고 배를 타고 건너왔다. 베링 해협 지금도 얼음 위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데 배를 언제부터 사용해서 베링 해협을 횡단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B.C. 7,000년 경에 이미 북유럽에서 배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인디언들은 훨씬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 같다.
위와 같은 주장은 그 밖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도 많이 주장되어 왔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곳 미주대륙에 거주하고 있는 인디언들의선조들은 어디에서 건너 온 어떤종족이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하여 아시아의 요람지에서 살던 인간들이 베링해협을 통하여 그곳으로건너 갔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 하면서도 그들의 건너간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그 견해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 몇 가지의 견해를 예를 들면 지리학자인 G. F. 카터박사는 약 10만년 전에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고고학자인 J.B. 그리핀 박사는 2만년 내지 3만년 전에 인간들이 신세계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인디언들은 어디에서 왔나?
그런데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은 순수한 아시아 사람들이었느냐? 아니면 동북 아시아에서 잠시 머물었다가 건너온 유럽사람들이 아닐까..... 또 그 이주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을까.....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세 대학에서 모인 세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G·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선사역사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이 세 대학의 세사람의 학자들은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원주민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 세 이주 무리들을 열거하면 그 첫 번째는 1만 5천년 전에 현재의 시베리아 레나강 계곡의 "아메린드"혹은 "알곤컨"이 이주하였고,
둘째는 6천년 전에 현재의 시베리아 알단강 유역의 "아타바스칸"혹은 "나-데네"가 이주하였으며, 6셋째는 4천년 전에소련과 중국 사이에있는 지역에 걸터 앉아 있는 "아무르"강 분지의 "에스티모 알륫" 이 이주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세 무리들은 차례대로 이주했기 때문에 먼저 건너간 사람들은 남미(南美)까지 내려 가게 되었고 늦게 온 무리들은 북쪽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상으로 남·북미의 원주민들이 베링 해협을 통하여 이주해 간 경위를 살펴 보자.
그들은 인디언이라고 호칭하게 된 유래(由來)는 "콜롬부스"가 인도를 향해 서쪽으로 항해한 지 70일 만에 쿠바 북쪽 바하마군도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고국인 스페인에 돌아가서 "나는 인도에 갔다"고 선언하면서 거기 사는 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디언의 뿌리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언어(言語)를 연구한 그린버그 교수는 2백개가 넘는 그들의 언어들을 세가지의 부류로 분류하였다. 그 중 "아메린드"가 가장 큰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넓은 지역에 펴져 있었고 또 가장 오래된 언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타바스칸"혹은"나-데네"는 캐나다와 북캘리포니아 지역에 국한 되어 있었으며 "아파치"나 "나바호"도 이 나-데네를 사용해 왔다.
그 다음의 에스키모-알륫어는 북아시아 언어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였다. 그린버그 교수는 시베리아의 원시 언어를 연구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인디언의 언어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는 언어의 유사성을 통해서 인종학적인 유사성을 탐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인디언들은 그 이주 연대가 서로 달라도 많은 점에 있어서 상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그들의 뿌리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래와 그들의 신세계 이주에 관하여, 언어 인류학자인 그린버그 교수와 인종학자인 제구라 교수 및 인류학자인터너 교수는 서로 연구결과를 놓고 종합 토론을 전개한 결과, 인디언의 언어가 종래 생각했던 것처럼 2백 혹은 3백 개가 아니고 단지 세 개의 언어군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린버그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장 넓게 사용한 언어가 알고퀸이고, 그 다음이 아타바스칸과 나-데네이며, 세 번째가 에스키모-알륫이라고 말했다. 제구라 교수는 인디언의 혈액형을 A, O, B, Rh형으로 나누어서 분류하여 발표하였는데, 그도 역시 인디언을 크게 나누면 세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린버그가 나눈 세 부족에 자기의 혈액형 연구결과도 맞추어서 배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는 또한 언어의 분포에 있어서도 역시 위의 세 지역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 제구라 교수는 그린버그 교수와 의견이 일치함을 말하였는데,이것은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가 같은 결론에 도달 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또 터너 교수는 치아 형태를 분석하므로써 인디언의 유래를 추적하였는데 그들의 어금니 수를 먼저 검토하였다.
예를 들면 유럽인들은 어금니의 뿌리가 두 대이고 어금니의 뿌리가 세 개이면 아시아인 아니면 인디언들의 이이다. 그래서 치아의 형태는 인종의 유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터너 교수는 직접 시베리아와 중국에 다녀왔는데, 그는 거기에서 8,000년 내지 2,000년이 되는 인간의 이빨들을 조사하였다. 이 이빨들은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러한 터너 교수의 치아 형태에 의한 분류는 제구라의 혈액형에 의한 분류와 일치하였고, 그린버그의 언어에 대한 분류와도 일치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들 세 학자들은 인디언의 유래에 대한 공통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인디언들의 세부족이 동시에 이주한 것이 아니고 제 일차로 1만5천년 전에 제2차로는 6천년 전에 그리고 제3차에는 4천년 전에 각각 이주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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