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스크랩] 암살당한 독립운동가

대운풍 2012. 8. 15. 19:04

 

 

"장준하 선생, 머리뼈에 6cm 구멍이…"   2012-08-15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된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지난 1일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조성중인 ‘장준하공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에 대한 검시가 처음 이뤄졌다. 사망 당시에는 간단한 검안만 실시하고 매장됐으며 본격적인 검시는 처음이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참여한 검시에서 머리 뒤쪽에 6㎝ 정도의 구멍과 머리뼈 금이 발견돼 ‘인위적인 상처로 보인다’는 1차 소견이 나왔다.

 

 

 

 

 

장준하 (張俊河)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겸 정치가

1918 ~ 1975. 8. 17.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 등에서 수학하고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하려 햇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가 폐교되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후 일본에 유학 문익환, 전택부, 김익준 등과 수학하였다. 

 1944년 1월 일본군에 징병돼 중국전선에 투입됐다. 1944년 7월 중국 강소성 서주의 일본군에서 탈출해 6000리 길을 걸어서 충칭에 있는 광복군을 찾아가 김구 주석을 만났다. 한국으로 잠입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된 미국 OSS 특수 첩보원 양성교육을 받았고 광복군 육군 대위가 된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장하림은 장준하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임시정부 요인들과 귀국하였으며 김구 선생의 수행비서로 활약했다. 김구 선생 암살후, 문화사업을 전개하였으며 1953년 피난지 부산에서 <사상>을 창간했다. 하지만 부통령 이기붕의 탄압으로 폐간되자 이름을 바꾸어 <사상계>를 다시 창간했다. <사상계>는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데 앞장섰으며 가장 양심적인 언론이었다. 

 419혁명 후 장면내각에서 기획부장을 맡아 정책기획을 담당했다. 516쿠테타 후. 박정희, 김종필을 비판하는데 앞장섰고 1967년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통하여 박정희 정권에 맞섰고, 민주세력통합에 힘썼다.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에 있는 약사봉에서 의문사했으며 당시에는 등산 중 실족으로 발표됐다.       

 

 

1946년 겨울 백범 김구 선생과 장준하 선생(김구 선생 오른쪽 뒤 안경 쓴 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재판받는 모습

 

 

국내 침투를 위해 미국 OSS 특수훈련을 받던 광복군 장교 시절의 장준하 선생(오른쪽)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싸늘하다비수가날아와꽂힌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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